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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격, 시간의 층   서울 의정부지 유구보호시설 | 서울특별시 종로구 | 2020 설계공모 2등 | 전시시설면적 1,273㎡ 유구보호시설 2,599㎡

우리는 문화재의 존재를 현대인의 일상에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조선시대 의정부는 지금으로 치면 건너편의 정부청사로, 한 나라 행정의 기둥 역할을 했던 매우 중요한 건물이지만 지금은 그저 돌무더기로 보일 수도 있을 정도의 흔적만 겨우 남아 있다. 더구나 의정부터는 매년 대한민국의 역사가 새로 쓰여지고 있는 광화문광장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이런 장소야말로 역사가 현재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것임을 되새기게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서 옛 의정부 건물의 품격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부지 안의 다른 시대 유적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현대인에게 역사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집중했다.

옛 의정부 건물의 격과 위엄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선택한 전략은 옛 건물의 배치와 볼륨을 복원하는 것이다. 유구보호각은 정본당과 협선당의 볼륨을, 전시관은 내행랑터의 위치와 볼륨을 최대한 유지하여 계획하였으며, 의정부에서 마당이었던 공간은 다시 마당으로 비워둠으로써 배치를 복원하였다. 무엇보다 전시관은 이 부지에서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단층으로 만들어 낮게 깔리도록 계획하였다.

반면 보호각의 형태는 조선시대 의정부 건물을 기둥의 위치와 처마선을 살리는 방식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기와지붕이 가진 단아한 곡선은 살리면서도 무거운 중량감은 덜어낸 형태로 만들었다.
유구보호각은 조선시대 정본당과 협선당이 서 있던 위치에 그 볼륨과 구조적 배열을 그대로 유지하여 배치한다. 기둥은 최대한 가늘게 만들기 위해 구조해석을 통해 철골부재로 대체하며, 지붕은 조선시대 기와지붕이 가진 선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도 중량감은 덜어낸 현대적 형태로 번역한다.
전시관과 유구보호각 전시를 보고 난 후 다다르게 되는 휴게공간에서는 유구보호각의 기둥 사이로 광화문과 광화문 광장을 볼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조선시대와 근대, 그리고 현대의 모습을 유구보호각이라는 레이어를 통해 함께 바라보게 함으로써 역사의 연속성을 일깨우고자 한다.
의정부와 다른 시대에 존재했던 유적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 다른 세 개의 층을 정의하였다. 우선 조선시대 유구는 원래의 레벨과 상태를 유지한 채 보호각과 전시관 내부를 이용하여 보존 전시를 하고, 근대시대 유구 중 일부도 원래의 레벨에 두고 보존 전시를 하며, 마지막으로 현대 공원의 층에 조선시대와 근대시대의 유적 일부를 재현하여 전시하는 전략이다.
문화재는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꽁꽁 싸매서 보존하고 재현하는 방식으로는 문화재를 통해 역사의 의미를 현대인에게 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유구보호각과 공원계획에 현대적 형태언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지금 이 시대와 소통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 가까운 과거를 비롯한 모든 시대의 역사가 나름의 가치를 가진 소중한 자산임도 보여주고자 하였다. 유구보호각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며 지금 또한 언젠가 역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을 때, 의정부지는 지금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더욱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광화문 광장과 경계 없이 시민에게 개방되는 이 장소에 역사의 격과 시간의 층을 경험하는 새로운 문화공간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