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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사람의 일 | 이승환

종종 사람들이 대체 아이디알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곤 한다. 이럴 때면 좀 난감해지는데, 뭔가 그럴듯한 개념의 머리글자를 딴 것 같은 본새지만 사실은 아이디어나 아이디얼 같은 평이한 영어 단어를 연상시키는 알파벳의 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 사무실 이름을 지을 때 고민을 적게 한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이름을 가르고 쪼개서 재조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평소에 좋아하는 단어나 개념을 이렇게도 놓아보고 저렇게도 붙여보며 온갖 호들갑을 다 떨었는데, 결국 도무지 어감이 호감을 주지 않거나 도메인이 선점되었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탈락되기 일쑤였다. 자포자기하고 있는 와중에 첫째 아이가 갑자기 아이디어라는 단어의 발음을 가지고 만든 농담(pun)을 던졌고,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웹에서 도메인이 유효한지 확인만 한 다음 바로 결정을 내렸다. 부끄러워서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밝힌 바 없는 아이디알이라는 이름의 탄생 비화다. 난감함을 어떻게든 가려보려고 무슨 Integrated Design Research의 줄임말이네 뭐네 하는 설명을 어딘가에 쓰긴 했지만, 진지하게 이걸 가지고 어디서 썰을 푼 적은 없다.

뭔가 설계 철학이 담겨 있는 인상을 주는 사무실 이름을 보면 조금은 부럽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거의 의미가 없는 이름으로 간판을 달았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건축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괜히 내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에 선을 그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걸 일종의 자유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조금 다른 면에서 보면 건축 작업의 원동력을 건축가의 내적 논리나 의지보다는 좀 더 외적인 조건에서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학교에서 배운 익숙한 말들로 설명하자면 대지 조건이나 컨텍스트, 프로그램의 특수성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다 합치면 정말 초라한 숫자지만 지난 몇 년 동안 해온 준공작과 계획안들을 늘어놓고 보면 뭔가 겉으로 드러나는 아이디알의 일관성 같은 것이 우리 눈에도 보인다는 점이다. 한두 아이템은 공모전에서 떨어진 것이 아까워 재활용하기도 했지만, 이것 말고도 덩어리를 뭉텅뭉텅 끊어 내거나 밋밋한 면을 크게 개의치 않고 툭 던져 놓는 조형 방식을 은연중에 우리가 선호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일부러 없는 것을 만들어내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덧붙이기 싫어하는 평소의 성격이 건축 작업에서 드러난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건축은 건축가의 태도와 가치관이 건축의 어휘로 변환되어 구체화된 결과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지만, 혹시 앞으로 몇 년이 흘러 단순한 것들이 싫어지고 뭔가 오밀조밀한 것이 좀 더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는 믿음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느낌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도 있다. 어쨌든 문제될 것은 없다. 사무실 이름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정작 건축에서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결과물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물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과정의 면면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예전에 우리 작업을 다섯 개의 키워드로 정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때 선택한 단어들이 ‘불만’, ‘느림’, ‘공공’, ‘배경’, ‘투쟁’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 작업의 결과물에 대한 자기비평적인 내용은 한두 개 꼭지에서 조금 다루었을 뿐이고, 대부분은 우리가 어떤 성격(성질이라고 해야 맞을 지도 모르겠다)을 가진 사람들인지, 건축가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지, 불합리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갈등을 해결했는지에 대한 기록이었다. 결국 그 글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건축은 사람이 한다는 사실이었던 것 같다. 내가 만약 어떤 건축주에게 건축가를 소개시켜줄 일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나올 건물이 얼마나 멋있고 삶에 있어서 매 순간의 의미를 일깨우는 걸작이냐 보다는, 처음 상담부터 시작해서 수십 번도 더 있을 여러 회의와 결정의 순간, 그리고 좀 더 편안한 만남에 이르기까지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과 같이 할 것이냐를 더 따져볼 것 같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그런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예쁘고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건물을 설계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인지도 모르겠다.


건축이란 무엇인가를 굳이 묻는다면 | 전보림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수의 건축인들은 건축을 엄청나게 대단한 그 무엇이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나도 건축을 무척이나 좋아하기에 직업으로 선택했고 출근하지 않는 날에도 건축을 생각하며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건축을 숭배까지 하지는 않는다. 건축은 나에게 삶을 이루는 일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특집호에 싣기 위해 써야 할 에세이의 주제가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왜 건축하는 사람들만 유독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해 자꾸만 질문을 던져가며 의미를 찾으려 하는 걸까 문득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건축은 극히 실용적인 분야라 결과물이 그 의의를 충분히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건축이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 되는 건 기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거창해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런 노력 때문은 분명 아니겠지만, 건축설계는 유난히 직업으로서의 처우가 좋지 않다. 특히 건축의 의미를 따지려고 들 때 그 대상이 될 만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그렇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직접 실시설계를 하면, 실시설계를 하지 않고 허가도면만으로 시공을 하도록 만드는 사무실이나 실시설계를 외주로 처리하는 대형사무실과의 설계비 경쟁에서 밀리면서 가난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야릇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단 이런 상황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과연 건축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가장 먼저여야 하는 것인지 나는 오히려 되묻고 싶다. 건축의 의미를 찾는 것도 의미는 있겠으나, 그보다 먼저 건축설계가 직업으로서의 기본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먼저일 것 같아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어진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면, 나는 그저 ‘나에게’ 건축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말하고 싶다. 나에게 건축은 직업이고 일이다. 하여 건축설계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내 능력과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싶다. 다른 분야에 비해서 형편없이 기울어진 저울추를 발견하고 자괴감을 느끼는 순간을 더는 마주하고 싶지 않다. 사실 제대로 하려고 들면 설계만큼 종합적인 사고력을 요구하는 분야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건축설계를 잘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두뇌회전이 빠르고 감각도 좋다. 그런데도 건축설계업 신입의 연봉은 법정 최저임금과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소장인 나의 연봉은 대기업의 초봉 언저리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의 나에게 가장 절실한 고민은 어떤 건축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건축을 하느냐이다. 슬슬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나이가 되니 그 고민에 대한 답이 더 절실해진다. 삶의 긍지와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으로서의 건축의 길을 어떻게 하면 찾아 갈 수 있을 것인가.

몇 해 전 서울대 정치학과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라는 제목의 한겨레신문 칼럼이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명절에나 겨우 만나면서 오지랖 넘치는 질문을 던져대는 가족과 친척들에게, 그들이 한 질문 속 핵심단어의 정체성을 되물으면 분명 질문을 한 이는 어안이 벙벙해져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하지 않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란 유머러스한 내용의 칼럼이었다. 혹시 이 질문도 그런 의도였을 뿐인데 내가 오버한 것일까?


공공의 건축, 길을 묻다

2020년의 땅집사향의 첫 포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후 1년이 훌쩍 지나갔는데, 2020년을 총평해 본다면요?

전: 개인적으로 이전에는 오롯이 건축만을 생각했다면, 지난 한 해는 사무실의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게 된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건축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 사무실을 어떻게 운영해나가야 하는지, 좋은 사무실의 조건은 무엇인지 등 저희가 가진 건축적 능력보다도 사무실을 운영하는 운영자로서의 능력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던 한 해였는데 아무리 봐도 많이 부족했고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저희 두 사람의 관심 분야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데, 전 소장이 작년에 사무실 운영에 집중했다면 저는 외부활동에 무게 중심이 좀 더 쏠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 범주에서 본다면 공공 위주의 프로젝트에서 민간 프로젝트로의 전환이 일어난 시기라고 총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외부활동이라면 어떤?

이: 작년 5~6월 정도에 사무실에서 그동안 했던 작업 중 가장 큰 규모의 근린생활시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이제는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계사무소는 왜 안식년이 없는지에 대한 우스갯소리를 하면서요. 작년에는 전 소장과 함께 책도 썼지만, 대상이 다른 또 하나의 책을 시작하면서 현장 감리를 다니는, 어떻게 보면 조금 설렁설렁하겠다는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그 시기에 우연히 화성시로부터 총괄 계획팀 멤버로 활동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고 그 일을 시작하면서 부족한 지방 시스템을 정비하고 가치관을 동화시키는, 어떤 새로운 무언가를 개척해나가는 과정에서의 성취감을 느끼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새건협 정책위원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새로 만드는 한국건축사협회에 힘을 보태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외부 활동의 카테고리라도 시스템의 개선이나 조직적 움직임에 동참하고 집중하게 된 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전: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10년 정도 후 우리가 건축가로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상황이었다면 좀 더 쉽게 설득시킬 수 있었을 텐데, 이제 겨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현 상황에서는 분명히 옳은 일이고 가치 있는 일임에도 그런 활동들을 힘들게 이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나이나 경력 등을 따지기 때문입니다.

이: 냉정히 말하면 우리 사무실이 진행한 작업의 개수가 너무 적고, 그에 비해 많은 유명세를 탄 것이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너무 부풀려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젊은건축가상 수상 당시 선정한 5개의 키워드(불만, 느림, 공공, 배경, 투쟁)를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라고 정의했는데 이 태도는 아직도 유효한가요? 변화된 것이 있다면요?

이: 저 키워드 중 특히 공공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했던 작업을 대상으로 바라본 키워드였기 때문에 공공성을 만드는 어떤 방법들이 동일하더라도 이제는 민간 영역에서의 테스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카페를 하나 진행 중인데 카페는 민간이지만 공공의 성격이 강한 것 같아요. 공공 프로젝트에서도 카페테리아 혹은 아무나 들어와 쉴 수 있는 부분들이 중요한 것처럼 결국 공공이라는 목적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공간 자체가 어떻게 공공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 민간 프로젝트를 통해 실험해보고 싶은 것이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변화라기보다는 일종의 변주라고 할까요.

전: 얼만큼의 공공성이 있는 공간을 만드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공공 프로젝트를 도전하면서 성취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기존의 공공건축, 특히 학교 건축이 가진 딱딱한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깼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민간에서는 이미 하고 있는 것들 임에도 공공의 범주에 오면 유독 시스템을 강조하거나 선입견에 막혀 제한을 받아서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요. 그걸 깨기 위한 시도들이 한두 번 이어지면 그게 시스템 안에서는 사례가 되어 이후에는 더 괜찮은 것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민간의 경우 클라이언트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좀 더 유연하게 변경이 가능하지만 공공은 관리라는 측면에 많이 매몰되어 유연한 사고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과거에 묶여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세금을 내는 일개 시민으로서 그 세금들이 좀 더 가치 있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공건축의 부조리한 현실이나, 건축인으로서 고단한 현실 등을 날 것 그대로 가감 없이 밝히는 편인데, 자칫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는 이런 내용들을 굳이 드러내는 이유가 있다면요?

이: 일단은 성격의 문제입니다. 속에 맺힌 응어리나 울분 등을 글을 쓰며 해소하는 편이라서요. 정당한 절차를 거쳐 공모전에 당선되면 우리의 법적 권한을 부여받는 것인데, 편의나 관행을 이유로 그 권한을 제한하는 등 이해하지 못할 상황들이 많았습니다. 글을 쓰는 최초의 목적이 고발의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런 상황들이 점점 누적되다 보니 불만들이 글로 표출되는 것 같습니다. 그저 우리만의 넋두리였던 내용일 뿐이었는데 공감하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우리가 하는 행동이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 손해가 될 수도 있는 게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자존심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공공 프로젝트의 경우 부조리한 일들을 겪었더라도 일을 지속하기 위해 현실에 수긍하고 타협하게 되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특히 교육청의 경우는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마치 허가방처럼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건축가만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하거든요. 학교의 경우는 건축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어지고 그 이후 자잘한 개보수 일을 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수의계약으로 처리는 부분들이 많아 입찰 후 낙찰되는 것도 그동안 해왔던 사람들과 지속하는 경우가 많고요. 종속되는 거죠. 반면 우리는 종속되고 싶지도, 타협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공공건축의 문제를 계속 비판하면서 공공건축을 계속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합니다. 두 분이 생각하시는 공공건축의 매력은 뭔가요?

전: 공공건축 판에서 투사라 불리게 된 것은 반대로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싫어서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 싫다면 아무 말 하지 않고 그 바닥을 떠나면 그만이지요. 건축가로서 공공건축이 잘 됐으면 좋겠고 주변의 공공 프로젝트 수준도 많이 상향되어 그것을 누리고 싶은 바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진행했던 공공 프로젝트들도 작업을 마치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얻는 기쁨들이 다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보람은 아무리 뛰어난 민간의 프로젝트라도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냉정하게 세금이 아깝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돈을 들이더라도 우리가 하면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고요. 역량 있는 건축가분들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공공건축에 참여해서 그 판을 좀 흔들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전: 공공건축은 건축가의 의도대로 구현하기에는 여러 장애물이 있기에 건축가가 가진 전투 역량을 드러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건축적 역량은 뛰어나지만 발주처와 큰 문제없이 일을 끝내겠다고 하는 순종적인 건축가분들을 보면 좀 아쉽기도 해요. 저희는 반대로 안 되는 걸 가능하게 만드는 지점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공공과 민간에서의 접근은 다를 것 같아요. 설계에서 우선시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이: 기본적으로 설계라는 관점에서는 다른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프로세스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요. 그렇다고 도면의 양이 줄어든다던가 하지는 않습니다.

전: 완성도 있는 건축물을 만들겠다는 일종의 다짐 같은 것이 단순히 저렴한 설계비를 받는 건축가와 우리와 차이를 만들 수 있는 포인트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면뿐만 아니라 스펙을 지정하는 것, 시공사를 선정하는 것, 협업의 과정 등 공공이냐 민간이냐를 떠나 우리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민간건축의 경우 공공건축이니까, 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남에게 보일 때 더 긴장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의 시선 보다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이죠.

정책 논의에 대해서도 많은 역할을 하시는 것 같아요.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이: 최근의 현안 중 주요한 것을 꼽자면 건축사의 업역을 확대하자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 물론 업역 확대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안전관리에 대한 부분인데, 공사를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건축사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물론 건축적인 부분은 건축사의 책임이 맞지만, 적어도 현장의 안전에 관해서는 시공자보다 그 내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별도의 전문팀이 책임을 지고 시공하던가, 시공사에서 그만큼 비용을 더 받고 하는 등 다른 방안을 고려해야 합니다. 업역 확대라면서 설계 이외의 것들에 대해 건축사의 책임을 강조하는데, 건축사는 설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전: 가장 시급한 것은 건축사들이 점점 늘어나는 반면 소규모 공공건축에 대한 설계 대가는 너무나 낮습니다. 대가 현실화가 가장 시급한 것 같습니다.

설계만으로도 충분히 바쁠 것 같은데 다른 활동들도 함께 하는 이유가 궁금한데요.

전: 건축가로서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익만을 위해 살지 말자는 사명감도 있습니다. 그저 멀리서 말로만 주장하지 않고 행동과 실천으로 옮기는 건축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 거절을 못 하는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공공건축을 열심히 하는 팀들이 많으니 그 판을 저희가 나서서 잘 깔아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다음 목표나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전: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사무실 최초로 인테리어까지 담당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그 외에는 다른 일이 많지 않아서 일을 늘리기 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좀 가져볼까 합니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가치를 떨어뜨려 에너지를 소진하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완성도 있는 작업을 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쓰면서도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설계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일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설계비가 책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우리 스스로를 갈아 넣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속가능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싶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여러 방식을 다양하게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운영으로는 지속할 수 없다는 고민들을 수렴하면서요.

이: 공모전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완성도 있게 잘하자는 생각입니다. 작년에는 프로젝트의 개수는 많았지만, 수준 자체가 스스로 만족하기 어려웠습니다. 올해는 스스로 내공을 쌓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와이드AR Special Edition 5호 (2021년 3-4월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