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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환경에서 바라본 아동친화학교 | 전보림 이승환

들어가며

아동친화학교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을 때 건축가로서 학교건축에 대한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반가웠다. 학교건축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부터 우리는 늘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그래서 더 나은 학교 건축,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편견이 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우리는 이제 아이들을 위한 좋은 학교 공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부터 진지하고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가 이를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한 걸음이 되기를 희망한다.

물리적 환경의 여러 측면과 건축가의 역할

우리는 건축가로서 아동친화학교의 개념을 정립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 과제에서 물리적 환경의 측면을 다루고자 한다. 그런데 설문조사와 원탁토론 등의 자료를 분석하면 학생과 교사 등 사용자가 바라보는 물리적 환경은 여러 측면이 섞여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크게 청결 상태, 시설의 유무, 그리고 디자인의 문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모두 서로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지만, 사안에 대한 핵심적인 결정권을 가진 주체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분리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학교의 청결 문제는 설문조사와 원탁토론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사안이다. 원탁토론에서 학교의 청결 문제가 언급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상암초 2, 3, 4조, 성서중 1, 2, 3, 4조, 홍익여고 1, 3조, 경성고 3조, 디자인고 1, 3조(우리들에게 다니고 싶은 학교를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요?>(건축) 우리가 생각하는 쾌적한 환경이란 어떤 환경인가요? 항목 참조).

청결과 정리정돈이 쾌적한 환경을 위한 가장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기 때문에 이는 매우 당연하게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행정적 지원을 통해 청결 유지를 위한 각종 도구와 인력 등 자원 할당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가의 입장에서는 이를 보조하기 위해 설계 단계에서 청소와 유지관리가 용이한 디자인을 제시하여야 한다.

시설의 유무는 일차적으로 학교 시설을 담당하는 행정기관, 즉 교육청이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시설이 우선적으로 필요한지에 대한 결정은 좀 더 상위 차원에서 각계 전문가들의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특히 건축가는 변화하는 가치관과 사회 조건을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실질적인 공간의 요구로 번역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디자인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 지를 결정하는 과정 전체를 말한다. 건축가는 학교 건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거시적인 공간 배치와 개념에서부터 아주 세밀한 디테일과 색채 계획에 이르기까지 전문가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번 정책 연구에서도 물리적 환경의 디자인이라는 영역이 건축가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분야라는 전제 하에 우리의 의견을 펼치려고 한다.

학교 건축에 담긴 편견

우리 사무실은 두 개 학교의 다목적 강당 즉 체육관 프로젝트를 동시에 설계하는 기회를 통해서 학교 건축에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압구정초등학교 다목적강당과 언북중학교 다목적강당이며, 모두 2018년에 준공되었다.

그다지 많지 않은 경험을 가지고 학교건축에 대해 논하는 것이 다소 주제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이 학교 건축도 익숙해지면 무뎌지고 당연하게 생각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학교 건축에 대해 경험이 많지 않기에 오히려 학교 건축 시스템만이 가진 특수성, 즉 폐쇄적인 구조와 학교 건축에 대한 선입견을 더욱 강렬하게 경험했다.

사실 그동안 학교 건축은 전쟁 이후의 급격한 학생 수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오로지 신속한 양적 조달만을 목표로 특정 조직에서 전담해서 조성해 왔다. 더 나은 학교 건축에 대해 고민할 여유도, 예산도 없이 그저 학생들이 비바람을 피할 수만 있는 공간을 되도록 빨리, 많이 만드는데 집중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거의 모든 학교는 똑같은 평면, 똑같은 입면을 가진 어떻게 보면 커다란 닭장 같은 건물로 지어지게 되었다. 기존의 도면을 그대로 사용하면 되는 설계 과정엔 특별히 능력이 있는 건축가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학교 건축 설계 과정과 교육청 업무에 대한 경험이 많아서 담당 공무원이 신경 쓸 필요 없게끔 알아서 일을 처리해 주는 일부의 건축가들에게만 설계를 맡겨 왔다. 그래서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축가는 제한적이었다. 우리는 뒤늦게 허물어진 담장 일부를 넘어 들어간 건축가들이었다.

우리가 설계를 한 것은 전체 학교가 아니라 그 일부일 뿐이었지만, 학교 건축의 특성상 교육청과 학교 관계자를 모두 만나면서 일을 진행했기 때문에 학교 건축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엿보기에는 충분했다. 설계안을 설명하면서, 건축물의 내외부에 사용될 재료를 선정하면서, 내부의 인테리어 방향에 대해 회의를 하면서 모두 자기의 의견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알게 된 그 생각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 환경에서는 아름다움보다 오직 안전만이 우선이다.
둘째, 원색이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는데 좋다.
셋째, 학교건축은 사용자가 주인이고 따라서 주인 마음대로 정할 수도 또 바꿀 수 있다.
넷째, 되도록 관리가 필요 없는 시설이 좋다.
다섯째, 아이들은 어른들이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좋아한다.

어찌 보면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지도 모르는 생각들이다. 그러나 막상 학교 건축 설계를 하면서 부딪쳐 보니, 더 나은 학교 공간을 만드는데 있어 위의 생각만큼 큰 걸림돌도 없었다. 기존의 디테일이 아닌 다른 디테일을 사용하려고 하면 언제나 안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저지당했고, 알록달록한 원색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불안해했으며, 건축설계에 대한 전문가를 앞에 두고도 사용자가 주인이라며 디자인을 결정하려고 했다. 관리하기 불편한 것은 더 좋은 재료라도 거부했으며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어른들을 위한 공간과는 무언가 달라야한다고, 아이들은 어른들과는 좋아하는 것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위의 생각들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다. 안전을 지나치게 강조하느라 학교건축은 늘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원색이 창의성을 키운다는 논리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학교건축이 왜 학교 관계자들의 것인가? 학교건축은 세금이라는 공적자금으로 지어진 공공의 재산이다. 소중한 공공의 재산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는 성실히 관리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따로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학생들은 생각만큼 어리지 않다

기존의 학교건축을 둘러싼 생각의 바탕은, 학교건축은 다른 건축들과는 달라야한다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어른들을 위한 공간과는 다른 형태, 다른 색상, 다른 재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빨강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랑색 등이 골고루 섞여야 하며 의자든 바닥이든 푹신한 쿠션이 있어야 하고 모든 모서리가 둥글어야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사실 유아들을 위한 놀이방에 적용해야 할 법한 것들이다. 어느 정도 자란 초등학교 학생을 위한 공간 또한 그러해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몸 놀이를 하는 공간을 만든다면 그렇게 쿠션이 있는 바닥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색상이 반드시 알록달록할 필요도, 또 몸놀이 공간이 아닌 공간까지 그런 디테일로 만들 필요는 없다. 초등학생은 유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초등학생 정도가 되면 알록달록한 무지개 색깔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다. 학교 공간에 여러 색을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에서도 연령에 따른 큰 차이 없이 40% 가까운 학생들이 시간이 지나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답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학생들에서는 응답 비율이 가장 높은 답변이다. 대조적으로 교사는 여러 가지 색을 쓰는 것이 실제로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 놀 때 몸놀림을 조심하지 않으면 남이 다칠 수도, 혹은 스스로가 다칠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간혹 그런 기본을 모르는 어린 학생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여럿이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학교이니 가르치면 될 일이다. 학교 문 밖을 벗어나면 온 세상이 딱딱한 바닥과 뾰족한 모서리로 되어 있는데 학교 안에서만 조심할 필요 없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안전과 모험의 균형

학생을 위한 공간은 안전에 기준을 맞추어야 할까, 아니면 모험심을 불러일으키는 재미있는 공간에 기준을 맞추어야 할까? 이러한 질문이 고민스러운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이 두 가지 기준이 서로 상충하기 때문이다. 이는 놀이터 디자인 전문가들에게는 머리에서 늘 떠나지 않는 화두이기도 하다. 만약 놀이터라는 공간을 학교 전체로 확대시켜본다면, 아동친화학교를 바라볼 때 안전과 모험의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가 된다.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현재 학교는 충분히 안전하게 계획되어 있으며, 기본적으로 안전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것에 큰 이견은 없다. 그러나 학생과 교사, 학부모를 분리해서 바라보면 학생들이 안전을 좀 희생하더라도 재미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쪽에 찬성하는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음을 알 수 있다. 안전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학교에 지금보다 재미있는 공간이 많으면 좋겠다고 대답한 비율은 학생 19%, 교사 5%, 학부모 4%였다.

안전의 일차적인 책임이 교사에게 있는 현실을 볼 때 당연한 결과일 수 있지만, 안전에 대해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가 학생들이 바라는 공간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는 않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잠재적 위험을 가진 환경적 요소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하나로 뭉뚱그려 바라보면 딱히 별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성격의 위험이 혼재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먼저 절대적인 위험 요소는 여러 생각할 필요 없이 반드시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위험요소다. 말하자면 부실한 옥상 난간 같은 것들이다. 대개는 건축법을 통해 기본적인 안전을 확보하도록 되어있으니, 어떻게 보면 실제로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유지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디자인의 관점에서도 안전을 확보하면서 미적으로 보기 싫지 않은 디테일이 많이 개발되어 있다. 단지 비용과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 다음은 잠재적 생활 사고의 위험성을 가진 요소다. 예를 들자면 뾰족한 모서리, 구멍이 작은 철망이 이에 해당된다. 실제로 다목적강당 설계를 진행하면서 난간 측면 재료로 기존 학교 건축에서 시도된 바가 없는 철망(익스펜디드 메탈)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학교 측으로부터 손가락이 끼어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받은 경험이 있다.

커다란 사고의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전한 것들이 좋다는 인식 아래 기피되어온 것들이다. 이런 관행에 두 가지 관점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먼저 앞서 말한 것처럼 학교를 벗어나면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데, 학교에서 위험을 가르치지 않으면 어디에서 또 위험을 체험하고 배운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런 시각으로 온갖 위험할 것들로 예상되는 시도를 처음부터 막아버리고 항상 써오던 검증된 재료와 디테일만을 선택한다면, 학교 건축은 과연 언제,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재료와 디테일의 변화 없이는 새로운 공간 자체가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통제된 위험이 있다. 쉬운 예로는 몇몇 놀이터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높이가 높은 놀이기구를 들 수 있으며, 요즘 학교를 놀이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몇몇 실험적 프로젝트에서 볼 수 있듯이 예전 같으면 위험한 장애물로 취급할만한 벽과 의자, 지붕이 설치된 복도 또한 좋은 예다. 대표적으로 서울 신원초등학교의 '신나는 복도' 프로젝트가 있다.

감수할 수 있는 위험과 감수할 수 없는 위험을 깨닫게 함으로써, 모험심과 함께 학교 밖에서 만날 수 있는 더 큰 위험에 대해 대처할 능력을 길러주는 적극적인 시도인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기준이 지금처럼 지나치게 경직될 필요는 없다. 심각하지 않으면서 예측할 수 있거나 아예 어느 정도 의도된 위험은 교육을 통해 피하거나 조심하는 요령을 가르치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학교의 원래 취지에 더 부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공간이다.

자연으로부터 배우다

그렇다면 아름답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공간이란 대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자연의 재료로 세련되게 만든 공간이 가장 아름답고 좋은 공간이며, 지금 학교공간에 가장 필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공간을 크게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으로 나눈다면, 외부에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작지만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어야 하고 내부에는 자연 그대로의 물성을 느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서 단정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배움을 위한 공간이다. 그런데 그 배움이라는 것이 책이나 선생님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로부터, 세상으로부터도 배우고 무엇보다 자연으로부터 삶의 원리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 이 세상이 다양한 생명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모든 생명체가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은 그저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훌륭한 책보다 더 깊은 깨달음을 우리에게 준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도 적고 숙제도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학업성취도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얻는 핀란드의 교육에서는 어려서부터 숲속에서 놀고 관찰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날씨에 상관없이 어린 유치원생들까지 숲으로 데리고 가서 수업을 한다. 핀란드야 학교 근처에 그런 숲이 있어서 학교에서 숲으로 가면 되지만, 우리나라는 도시에 숲은커녕 공원조차 충분치 않다. 어쩌다가 공원이 있다고 해도 빈약한 나무들 몇 그루와 운동기구 혹은 놀이기구가 주르륵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 밖 공간이 그러하다면 학교 안의 공간이라도 자연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나무가 많은 공간을 특별히 충분하게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금 학교 시설 기준에는 나무가 심어진 녹지 공간에 대한 기준이 충분하지 않은데다 그나마 몇 그루 되지 않는 기존의 나무를 베어내는 일조차 서슴지 않는다. 서울시의 에코스쿨 조성사업이나 도시소생태계 조성사업 등 학교 숲을 시범적으로 조성한 사례가 몇 있기는 하나 그 수준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숲을 자연으로서 경험하려면 우선 울타리가 없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학교 숲은 자유롭게 들어가지 못하게 울타리가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오로지 정해진 길로만 가야한다. 그건 숲이 아니라 화단이다. 그리고 물론 시간이 지나면 나무가 자라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빈약한 나무들로만 채워져 있다. 전체 규모도 작고 나무도 가늘어서 숲이라 부르기 민망한 화단 수준인 것이다.

학교에 ‘숲’이라는 이름으로 공간을 조성하려면 적어도 운동장 크기의 1/4인 1000㎡는 되어야 하며 좁은 변의 최소 깊이가 나무가 2열로 자랄 수 있는 8미터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무가 한 줄로 쭉 늘어서 있는 공간을 숲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최소한의 생태가 만들어질 수 있을 정도의 깊이가 있어야 한다. 1000㎡는 운동장 한 켠에 조성되는 다목적강당 정도의 크기이다. 사실 1000㎡도 충분한 면적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학교부지의 크기를 생각했을 때 그 이상을 할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 면적을 최소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여건에 따라 더 큰 학교 숲을 조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학교 운동장의 규모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3~4000㎡ 정도이다. 축구를 할 수 있는 넒은 흙바닥의 운동장이 학교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지만, 이제 도시학교에서는 미세먼지 때문에 운동장보다는 체육관을 운동공간으로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니 축구를 하는 소수의 학생들 때문에 축구장 크기의 운동장을 고집하는 것 보다는 숲이라고 부를만한 크기의 충분한 녹지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전체 학생들에게 더 유익할 것이라고 본다.

숲을 조성할 때는 울타리를 치지 말아야 하며 나무 사이의 아래 부분에 잡목과 풀이 우거지도록 하면 더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선호하는 소나무류는 아래 다른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므로 다양한 생태를 관찰하기 위한 학교의 숲에는 적합하지 않다. 침엽수 보다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활엽수가 더 적합하다. 요즘에는 조경도 나무뿐 아니라 초화를 이용하여 계절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시기가 다양하여 사계절 다채로운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한다. 학교 숲에도 실력 있는 조경가가 그 기준을 만들거나 설계를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1층이 열린,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학교

학교 숲과 같이 자연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과 함께 학교 건물의 1층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또한 필요하고도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대부분 학교의 1층 공간은 학교 교무실, 교장실, 행정실 등 교사들을 위한 사무공간으로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학교 건물의 1층은 외부공간으로 바로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면 적극적으로 외부공간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1층 실내공간에 바깥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고 그 앞 외부에 지붕이 있는 전이 공간과 마당공간을 조성하면 아이들이 복도를 거쳐 건물 전체의 문을 통해서만 나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손쉽게 바깥으로 나가서 외부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당도 그냥 기존의 블록이나 모래바닥으로 된 운동장이기 보다는 목재 데크 등으로 포장한 공간이라면 활용도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런 공간이 되도록 가장 어린 학생들을 위한 교실이면 좋겠지만, 일부 학년의 학생들만 사용하기 보다는 모든 학년이 사용하는 특수 교실이어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되도록 많은 학생이 빈도 높게 사용하는, 활용도 높은 공간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친화학교의 환경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기본적으로 바탕에 가지고 있던 생각은 아이에게 좋은 것이 어른에게 좋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자연을 접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아침과 낮의 햇빛과 바람의 차이를 최대한 경험하는 공간이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더 건강하고 좋은 공간일 것이다. 그래서 이미 만들어진 학교나 혹은 새로 만드는 학교를 최대한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하는 것은 더 나은 학교공간을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학교 내부 마감재도 최대한 자연의 물성을 느낄 수 있는 목재를 많이 활용하고 그 색상 또한 원래 자연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도록 인위적인 도색을 최대한 자재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가정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을 생각하면 학교 또한 최대한 가정처럼 아늑하게 가꾸고 청결을 유지하는데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아동친화학교란 결국 더욱 자연과 친밀하고 집처럼 따뜻한 공간, 즉 건강한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나가며: 물리적 환경의 측면에서 아동친화학교를 바라보기

아동친화학교라는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이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고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아동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지만 결국 사례와 문제점, 해결책을 두루 살펴보고 개념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은 성인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종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인의 편향된 시각을 거두어야 아동친화학교가 어떠해야 하는지 또렷이 보일 것이다. 아동친화학교의 개념을 서둘러 확정하기 보다는, 그 개념에 반하는 것들을 먼저 가려내는 것이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는 성인 집단을 학부모, 교사, 그리고 행정기관(교육청 등) 이렇게 세 개로 나누어 각각의 경우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학부모는 교육에 대한 일방적이고 지나친 열망을 거두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학원(hagwon)은 위키피디아에도 등재될 정도로 전 세계에 알려진 우리나라만의 사교육 기관이다. 이럴진대 보통의 학부모가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할 때 진정으로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다양한 경험과 놀이 또한 공부의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으로 교육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교사는 일선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안전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학생들은 위험을 경험하지 않고는 위험을 알 수 없고, 모험 없이는 성장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과는 다른 학교 환경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안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교사에게 안전에 대한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너무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교육청으로 대표되는 행정기관은 학교의 제도와 시설이라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실행하는 정부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반복을 통해 굳어진 관행과 관습을 덜어내고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좀 더 진취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건축가와 같은 전문가의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미 이러한 취지로 여러 제도와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들려오는 전문가들의 고충은 여전한 것 같기 때문이다.

걷어내야 할 것 세 가지에 대해서 말했다면, 더해야 할 것 두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먼저 위해서 강조했듯 자연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환경오염과 미세먼지 등으로 외부 환경이 날로 열악하게 변하고 있는 요즘, 역설적으로 자연을 품은 외부환경의 중요성은 더욱 요구되고 있다. 그 다음은 바로 학생들이 공간의 주인이라는 인식이다. 정리와 실행은 숙련된 전문가의 몫이지만, 어떤 안건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에 학생들이 참여함으로써 스스로 정책을 결정하고 공간을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단, 그 범위는 명확하게 설정하여 최종적으로는 전문가에 의해 결과물의 완성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 조성하는 전문가인 건축가로서 아동친화학교를 당장 명확한 어휘로 정리하는 것은 일단 유보하고 싶다. 다만 우리가 기존 학교환경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에서 위의 세 가지를 덜어내고 그 다음 제시한 두 가지를 덧붙인다면 최종적으로 정리되어 만들어질 아동친화학교의 개념에 한 걸음 가까워질 것이라 믿는다.


<민·관·산·학 협력을 통한 한국형 아동친화학교 모델 개발>(마포구 | 2019)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