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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장관의 고민을 고민하다 | 전보림

요즘 대한민국 국토부장관이 많이 바쁘신 것 같다. 하긴 언제고 그 자리가 한가한 자리였던 적이 있었을까. 그렇긴 해도 취임한지 겨우 일 년하고 삼 개월 남짓한 시간동안에만 부동산대책을 벌써 몇 번이나 발표했던가. 하필이면 서울의 아파트값이 수직 상승한 시기에 국토부의 수장으로 있다니 참으로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급박함에 취임당시의 ‘주택공급은 충분하다’는 일성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수도권 신도시 조성계획을 발표하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서울의 집값이 이토록 무섭게 오른 원인이 어디 현 장관 취임 이후의 국토부 정책에 있던가. 법은 다주택을 소유한 투기 수요 억제를 겨냥한지 오래되었건만, 시장은 이를 비웃고 있다. 세금은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아파트 값은 그 한계가 없으니까.

서울의 아파트값만 이토록 급격하고도 과하게 오르는 것은 분명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그 값을 내려 보겠다고 지금 기존 신도시보다 서울에 더 가까운 곳에 신도시를 더 만들면서까지 아파트를 더 짓겠다는 국토부의 결정이,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옳은 해법인지에 대해서는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수요가 많다고 당장 공급을 늘린다? 아파트는 허니버터칩 같은 과자 봉다리가 아니다. 한번 지으면 적어도 30년은 가는데다 엄청난 자원이 들어가고 자연을 훼손하며 폐기물을 만든다. 섣불리 짓는 것보다는 원인을 세심하게 짚어 가면서 더 나은 해법을 신중하게 살피는 것이 먼저 아니겠는가.

1990년대 초반부터 우리는 서울을 비롯한 근교 신도시에 엄청난 물량의 아파트를 구석구석 촘촘하고 꾸준하게, 그리고 사실 돈이 되니까 신나게 지어왔다. 덕분에 90년대 초에 65%였던 주택보급률은 5년 전에 이미 100%를 가뿐히 넘어섰다. 그동안 인구가 늘어난 것까지 감안하면 주택 수는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이렇게 아파트의 수는 전과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늘어났는데도 일부지역의 아파트는 오히려 주택자체가 부족하던 시절보다도 값이 더 확 올랐다. 올라도 어지간히 오른 게 아니라 경기도와의 가격차이가 2배 이상이 날 정도로 올랐다. 사실 지역에 따른 주택가격차이의 의미는 의외로 단순하다. 집 값어치가 떨어질 염려가 없는 곳, 즉 돈 쓸 가치가 있는 곳이냐 아니냐의 문제이고 좀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살기에 편리한 곳이냐 아니냐의 차이다. 즉 서울에 비해 서울이 아닌 곳은 여전히 살기 편리하지 않다는 뜻이다.

사실 더 근본적으로는 이 모든 사단은 집을 그저 집으로만 보지 않고, 재산으로 보는 왜곡된 가치관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집을 마련하느라 들이는 돈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야말로 피와 같은 전 재산이다. 가게에서 두부 한모를 사도 2900원짜리와 2200원짜리의 가성비를 따지는 판국에, 집을 살 때야 오죽하랴. 내 재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값이 절대 떨어질 일이 없는 집을 사려고 하는 것은 왜곡된 가치관도 아니고 투기도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현상이다. 집을 두 채 혹은 세 채 이상 사려는 사람들의 돈만으로 지금의 서울 집값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도권의 미분양 아파트들, 깡통전세, 내 놓아도 팔리지 않는 아파트들을 주변에서 직접 보고 또 뉴스로도 본 사람들, 내 재산의 가치를 그렇게 허무하게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 조금이라도 살기 편리한 곳에서 살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함께 만들어 낸 것이 오늘 날 서울의 집값이라고 봐야한다. 그런 평범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투기세력이라고 부른다면, 아마 우리들 중 누구도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투기세력이냐 아니냐를 따져서 세금을 더 받는 것도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지역에 따른 집값의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야말로 더 근본적이고도 바람직한 문제 해결법일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국토부는 집값의 차이를 줄이는 방법으로 비싼 동네와 싼 동네 사이에 신도시를 만들어 집을 더 짓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건 격차를 줄이지도 못할뿐더러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즉, 이미 미분양이 많은 동네의 집값은 지금보다도 더 내려갈 수 있다는 뜻이다. 집값이 너무 올라서 사고 싶어도 못사는 상황과, 이미 산 집의 가격이 반 토막이 되는 상황의 파장은 그 심각성에 있어서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뿐인가.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밀도는 이미 너무 높다. 서울권역의 인구밀도는 지금도 OECD국가들 중 1위이다. 그것도 그냥 1위가 아니다. 2위인 멕시코의 2배, 뉴욕과 시드니의 8배, 런던과 도쿄의 3배인, 그야말로 압도적인 1위이다. 그런데도 서울에 가까운 신도시를 더 지어서 지금보다도 인구밀도를 더 높이겠다는 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정책이다.

서울에서 멀다는 이유로 외면 받아서 남아도는 집이 있는 이 시점에선 서울에 가까운 집을 더 지을 것이 아니라, 서울과 서울에서 먼 수도권 간의 지역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먼저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토부의 궁극적 목표인 국토의 균형발전이다. 사실 우리는 그간 지역격차 해소를 위해 나름 노력해 왔다. 신도시를 지으면서 기차를 놓았고 고속도로도 놓았고 공공기관도 내려 보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지역격차를 해소했다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성공한 신도시가 서울근교에 단 한 개라도 있던가. 그나마 강남권에 물리적으로 가깝고 전철노선도 2개나 되는 분당만이 집값격차가 다소 덜할 뿐이지, 진정한 성공사례는 없다. 너무나 가슴 아픈 사실이지만, 그간의 국토부 정책이 지역격차 해소에 실패했음은 오늘 날 집값의 차이가 선연하게 보여준다. 아직도 우리는 보행 친화적이고 자족적인, 지속가능한 도시에 대한 제대로 된 충분한 연구도, 그를 바탕으로 한 섬세한 도시설계 지침도 없다. 그저 신도시를 짓는다 하면 적당히 블록을 나눠서 중간 중간 학교와 상가지구와 업무지구를 박아 넣고 블록마다 아파트 단지를 건설회사에 하나씩 점지해 줄 뿐이다. 그런 도시 환경에 대해 사람들이 편리함을 느껴왔는지는 몰라도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상업적인 가로에도 싫증이 난 사람들은 로데오거리와 가로수길을 떠나서 이제 서울의 강북 골목으로 몰려들고 있다.

살아보니 별 매력이 없어서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만든다면, 그렇게 이미 만들어 놓은 신도시가 분산의 기능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면, 앞으로 새로 만들 신도시 또한 분산의 기능을 성공적으로 담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단지 서울에 가깝다는 물리적 조건에만 의지한 신도시를 더 만들겠다는 거라면 우리의 도시계획은 조금도 나아지지 못한 셈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신도시를 또 짓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번엔 정말 제대로 된 신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면 나는 말해주고 싶다. 이미 있는 도시부터 먼저 서울처럼 만들어 보라고. 지금 당장 교통이 상대적으로 불편한 일산이나 고양, 안산, 송도 쪽에 급행 전철만 놓아도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서울의 인프라에 기대지 말고 지역의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시간이 걸려도 장기적이고 거시적으로 옳은 정책이다. 오늘의 서울 집값은 지금 국토부 수장의 잘못이 아니지만, 30년 후 서울과 수도권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 그의 정책과 판단에 그 책임이 있다.


대한건축학회지 <건축> 2018년 11월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