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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설계비, 도대체 얼마가 적당한가? | 이승환

설계비는 집을 지으려는 예비 건축주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질문 중 하나겠지만, 얼마를 책정해야 하는지 개소 6년 차에 돌입한 설계사무소 소장에게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부족하긴 해도, 공공 건축은 공사비와 사업 성격으로부터 설계비를 도출하는 요율이 있다. 대한건축사협회는 이를 준용하여 설계비를 가늠해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산정식을 마련해놓았다. 그러나 단독주택의 경우 대부분 건축주는 ‘누구는 얼마에 지었던데’라며 주관적 기준을 마음에 그리고 나서 건축가를 만나기 마련이고, 반대로 건축가들은 주택은 어떻게 해도 마이너스라며 ‘좋아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크건 작건 이런 괴리는 어떤 용도의 건축이든 다 있지만, 유독 주택이 심한 이유는 규모가 작더라도 있을 건 다 있어야 하고 완성도에 민감한 사적 공간이라 작업량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2015년 건축정책학회에서 배포한 ‘건축주를 위한 건축설계비 산정 가이드’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들 중 가장 최신의 기준이자 건축설계를 노동의 관점으로 해석한 경우에 속한다. 건축가가 실제로 설계를 하는 데 들이는 시간을 기준으로 설계비를 산정하는 소위 ‘실비정액가산방식’을 적용했다. 건축물의 용도와 규모에 따라 소요 시간을 계산한 표를 기준으로, 건축가의 업무를 필수와 선택으로 구분하고 프로젝트의 다양한 조건까지 고려하여 실제 받아야 할 적정 설계비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2020년 기준, 경사지에 지상 2층으로 60평 주택을 지을 경우 부가세 제외 4,500만원의 설계비가 산출된다. 이 기준은 건축사협회와 건축정책학회가 여러 설계사무소를 대상으로 용도별 프로젝트의 실제 업무 소요 시간과 도면 작성 시간을 조사하여 작성한 것으로, 천차만별인 예술적 성취도나 요구 조건의 까다로움 등이 반영되지 않은 금액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좀 더 직관적이고 간단한 방법은 없을까?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당신이 어떤 분야의 전문가를 직접 고용한다면 한 달에 얼마를 줄 것인가? 건축사가 되기 위한 최소 요건은 5년제 대학 졸업과 3년 이상의 실무 경력이지만, 30대 후반에 자신의 사무소를 차려 독립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설계자는 국가자격증을 가진 10년 차 전문가로 상정할 수 있다(중견 기업의 10년 차 과장 월급이 400만~500만원 정도 한다는 것을 참고하자). 일이 없어 혼자 설계하든, 여러 개라 전담 직원 한 명과 나누어 하든 인력 기준은 비슷하게 건축사 한 명 분으로 보고, 이렇게 정한 금액에 2.5를 곱한다. 이는 인건비 1에 직간접경비 가중치 1.1과 협력업체(전기·기계·설비·구조 등) 비용 가중치 0.4를 더한 값이다(위 문서의 기준 참조). 만약 당신이 약간의 이해심을 발휘하여 어느 정도 실력 있는 협력업체가 참여하길 바라고, 건축가의 능력에 대한 약간의 창작료를 지불하고 싶다면 3을 곱할 수도 있다. 그다음, 건축가로부터 간단한 기본계획과 인허가, 그리고 공사를 위한 최소한의 도면만 받고 이후 과정은 당신이 직접 시공사와 알아서 헤쳐나가겠다면 여기에 설계기간 가중치로 2를 곱하라. 집중적으로 작업하는 기간은 한 달, 절반 밀도로 느슨하게 작업하는 기간은 두 달로 친 값이다(1 + 0.5 × 2 = 2). 물론, 있는 도면 약간 고쳐서 설계를 끝내는 허가방이라면 한 달 정도의 시간만 쓸 수도 있겠으나 그 정도면 나만의 집을 짓는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혹, 기본 계획을 진행하면서 몇 번의 피드백을 원하고 어느 정도 품격 있는 설계와 시공사와의 정확한 계약을 위해서 상세도면을 받고 싶다면 설계기간 가중치로 4를 곱한다. 협력업체 비용도 같이 증가하는 것이 불합리해보일 수 있지만, 설계기간이 길다는 것은 설계가 더 복잡하고 상세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외주비 또한 자연스럽게 상승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패시브하우스나 IoT 등의 첨단 기술이 적용된 집을 인테리어 포함, 준공 단계까지 꼼꼼하게 건축가와 함께하고 싶다면 감리비를 포함하여 6 이상을 곱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예) 기준 월급 450만원 × 2.5(경비 및 협력업체 가중치) × 4개월(설계기간 가중치) = 4,500만원(감리비 별도)

30평 이하나 단층이 아니라면 큰 차이는 없다. 일부 건축주들은 이 비용이 높다고 생각할 수 있다. 총공사비를 4억원 정도로 예상했다면, 10%가 넘는 금액의 설계비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건축주가 설계에 충분히 공을 들이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증언한다. 평생 살게 될지도 모르는 공간을 설계비 때문에 망치는 것은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 격이다. 화려한 마감재 대신, 수백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조명이나 가구 대신 당신의 삶을 담아줄 설계에 더 투자하라는 뜻이다. 설계를 충실히 하면 우리 가족에게 꼭 맞는 공간을 얻고 불합리한 추가 공사를 막을 수 있다. 건축가의 설계에 아쉬운 부분이 있거나 원하는 것이 따로 있다면, 정당한 비용을 지불한 만큼 당당하게 일을 시키면 된다. 건축주의 의도를 가득 담은 꼼꼼한 도면을 그려서 시공자에게 전달하고 그대로 짓게 하는 것, 건축가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전원속의 내집 2020년 9월호에 게재